소프트웨어, 도구를 넘어 문화가 되다.
김원 경원대 부총장 ‘기업맞춤형 인재양성’ 선언
‘SW설계·경영학과’ 연말 개설 교수와 학생 선발 전권 쥐어“아시아 대학평가 IT분야서 5년내 국내 1위로 올라설 것”
“요즘 대학생들 ‘스펙'(취업을 위해 쌓은 학력·경력 등 조건)이 좋다지만 신입사원을 뽑으면 최소한 1~2년은 재교육해야 일을 시킬 수 있습니다. IT분야는 하루하루가 다른데 대학교육은 현장보다 4~5년쯤 뒤떨어져 있어요.”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굴지의 IT기업 기술 담당 임원 9명이 대학 교육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지난 2일 오후 5시 경기도 성남시 경원대 국제어학원 회의실. 묵묵히 듣던 이 대학 김원(61) 부총장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여기 모셨습니다. 기업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 드릴 테니, 원하는 게 뭔지 말씀만 하세요.”
김 부총장은 국내에서 가장 이력서가 화려한 컴퓨터 공학자 중 한명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거쳐 일리노이대에서 전산학 박사학위를 받고, 컴퓨터회사 IBM 등에 근무했다. 텍사스에서 창업해 14년간 소프트웨어 회사와 컨설팅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2004년 귀국해 삼성전자 상근고문과 성균관대교수를 지냈다. 그는 학술서 5권, 논문 172편을 썼다. 젊은 교수 중에는 그가 쓴 책을 교과서로 공부한 이들도 많다. 2001년 ‘컴퓨터 공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국제컴퓨터연구학회(ACM) 특별공로상도 받았다.
▲ 김원 경원대 부총장이 앞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설 학생들로 채워질 강의실에서 미소 짓고 있다. 그는“5년 안에 국내 대학 공학·IT 분야에서 1위가 되겠다”고 했다./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그는 이제 막 성균관대에서 경원대로 옮겼다. “연말에 만드는 ‘소프트웨어설계·경영학과’를 통째로 맡길 테니 서울대를 뛰어넘는 명문으로 키워 달라”는 경원대 이길여 총장의 주문을 받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학생도, 동료 교수도 없다. 연말에 뽑을 학생 40명이 1회다. 교수를 어떻게 채울 거며 가르칠 내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도 그의 머릿속에만 있다. 학교에선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날 그는 IT기업 임원들과 함께 1시간30분 동안 공학·경영학·세계사·예술사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기업이 신입사원에게 바라는 필수과목’ 40여개를 추렸다. LG전자 민경오(53) 소프트웨어센터장은 “정말 우리가 원하는 인재를 양성해준다면 나부터 직접 강단에 서겠다”고 했다.
김 부총장은 “대학에서 적어도 회사에 ‘민폐’는 안 끼치는 학생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TV 한 대를 작동하는 프로그램을 컴퓨터 모니터에 띄우면 30만 줄 분량입니다. 휴대전화 프로그램은 200만 줄 분량이죠. 그런데 내가 모 기업 면접에 들어가 보니 지원자 태반이 ‘대학 시절 200줄 안팎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봤다’고 하더군요.”
그는 “한마디로 야구는 안 가르치고 야구 중계만 4년간 줄기차게 보여주는 식”이라며 “이러니 입사 후 실전에 투입하면 못 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성대 재직 시절 그는 학생들에게 매학기 프로그램 1000줄 분량의 숙제를 내줬다. 1초라도 지각하면 결석, 강의 도중 휴대전화가 울려도 결석, 잡담을 해도 결석 처리를 했다. 제자들은 “다른 과목 세개 듣는 것만큼 힘들다”고 투덜거리면서도 학기말 강의평가에서 언제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줬다. 제자 엄부용(20·성대 2년)씨는 “수업이 끝날 때마다 ‘굉장히 많이 배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 5월 조선일보와 QS가 공동 주관한 아시아대학평가 공학·IT분야에서 국내 1·2·3위는 카이스트·서울대 공대·포항공대에 돌아갔다. 경원대는 순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김 부총장은 “5년 안에 이 분야 1위가 되겠다”고 했다.
경원대는 이 학과 입학생 중 수능 1.8등급 이상에게 4년간 전액 장학금을 주고, 재학 중 평점 4.0 이상에 SCI 논문 1편을 쓴 학생은 미국 유명 공대에 유학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간단치 않은 도전을 시작하면서 김 부총장은 “나는 1등이 1등을 유지하게 하는 일보다 1등 아닌 사람을 1등으로 뛰어오르게 하는 일에 투지가 솟는다”고 했다.